가난은 숫자로 볼 때보다, 사람이 실제로 살아가는 공간 속에서 훨씬 더 처절하게 드러난다. 특히, 그것이 노동의 현장과 모성이 겹쳐 있는 자리라면, 우리는 더 쉽게 눈을 돌릴 수 없다.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도심에서 불과 20분 떨어진 곳, 도자기 협동조합이라는 이름 아래 펼쳐진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은 바로 그런 장면이었다.
한국늘사랑회 김상기 회장과 밥상공동체 허기복 대표가 지난 3월 15일 현장에서 마주한 것은 단순한 빈곤의 풍경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해 노동해야 하는 여성과 그 곁에서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잠든 아이들이 한 공간 안에 포개져 있는 너무도 무거운 현실이었다.
이는 김상기 회장과 허기복 대표가 이날 아디스아바바 인근의 도자기 협동조합을 방문해 350여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해 쉼 없이 일하는 현장을 둘러볼 때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이었다.
외관부터 낡고 위태로웠던 공장 안은 어둡고 침침했으며, 긴 공정 설비마다 여성들이 빽빽하게 앉아서 작업을 이어 가고 있었다.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짓는 얼굴도 있었지만, 그 미소는 삶이 여유로워서가 아니라 버티는 법을 배운 사람들의 표정에 가까웠다. 그리고 공장 한편에서 이 방문단이 마주한 장면은 그 미소 뒤에 숨겨진 고통의 실체였다.
퀴퀴한 냄새가 가득한 작은 방 앞에는 수십 켤레의 아이들 신발이 흩어져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곳은 수유실이자 탁아소로 쓰이는 임시 공간이었다. 노동하던 여성들은 잠시 짬을 내어 어린 자녀에게 젖을 물리고, 다시 먼지 가득한 작업장으로 돌아가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콘크리트 바닥에 펼친 얇은 매트리스 위에는 포대기에 덮인 아이들이 뒤엉킨 채 잠들어 있었다. 때가 타고 지친 아이들의 모습은 이곳이 단순히 가난한 노동 현장이 아니라, 복지의 사각지대가 얼마나 잔혹한 방식으로 삶을 파고드는지를 보여주었다.
화장실은 악취가 심했고, 아이들을 위한 음식이나 돌봄 체계는 없었다. 어머니들은 자신과 아이가 버티기 위해 싸 온 작은 도시락에 의지해 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이 장면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아주 분명하다. 노동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수단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생존을 위해 존엄을 뒤로 미루게 만드는 강요이어야 하는가. 여기서 여성들은 분명 노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삶을 확장하는 노동이라기보다, 아이와 함께 버티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아이를 안고 출근하고, 수유를 위해 잠깐 달려갔다가 다시 생산 설비로 복귀해야 하는 현실은 노동과 돌봄이 분리되지 못한 채 가장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겹쳐 있는 구조를 보여주었다.
특히, 이 현장은 ‘비극적 모성애’라는 표현이 왜 쉽게 소비되어서는 안 되는지를 일깨운다. 모성은 숭고한 사랑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랑이 사회적 보호와 제도적 안전망 없이 오직 개인의 희생으로만 유지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다시 먼지 속으로 돌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감동 이전에 질문을 요구한다. 왜 이 사랑은 이토록 열악한 환경 속에서만 증명되어야 하는가. 왜 아이를 돌볼 최소한의 공간조차 없는 공장이 여성 노동자의 생존 터전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모성의 위대함을 말하기 전에, 그 모성이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소모되는 현실을 먼저 직시해야 한다.
김상기 회장과 허기복 대표가 “이런 열악한 공간이라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현실 앞에 말문이 막혔다”라고 밝힌 대목은 그래서 가볍지 않다. 현장에서 “하나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탄식이 나왔다는 김상기 회장의 말 역시 단순한 종교적 감상이 아니다. 그것은 도움을 주고 싶지만,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한 인간의 정직한 절규에 가깝다.
이 현장을 다녀온 김상기 회장의 진단과 대안을 들어 보았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진짜 비극은 불쌍한 장면을 보는 데서 끝나지 않아야 한다. 그 장면 앞에서 내가 어떤 책임을 느끼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게 될 때 비로소 그 비극은 우리 모두의 과제가 된다.
이런 현장을 바라볼 때 우리는 두 가지를 경계해야 한다. 하나는 무감각이다. 먼 나라의 가난을 익숙한 뉴스처럼 소비하고 지나가는 태도다. 다른 하나는 값싼 연민이다. 잠깐의 충격과 눈물로 끝내고,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불행으로만 축소하는 태도다.
이 도자기 공장의 현실은 몇몇 불쌍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 노동, 돌봄 부재, 빈곤, 복지 공백, 국제적 불평등이 한 지점에서 교차한 결과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순간적인 감정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관심과 구체적 지원, 그리고 그 구조를 바꾸려는 실천이다.
물론, 외부의 도움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외면하지 않는 일은 언제나 첫걸음이 된다. 김상기 회장과 허기복 대표가 이번 방문을 계기로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지원은 단순한 물품 전달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구조적 개선을 통한 자립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돌봄 공간, 위생 환경 개선, 영양 지원, 여성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체계 등 무엇이 가장 절실한지를 현장과 함께 판단해야 한다.
좋은 도움은 감동적인 선행이 아니라, 필요를 정확히 읽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이 빈곤을 극복하게 하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이런 진단과 대안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김상기 회장과 허기복 대표의 분주한 발걸음과 애타는 모습이 부활절을 한 주간 앞둔 고난 주간에 하나님이 원하는 우리의 삶의 자세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