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문화저널 뉴스뉴스2026. 4. 24. 오후 5:23:08

둥지와 가정

박시우 작가
둥지와 가정

봄철이 서서히 물러가는 계절의 길목에서, 나무 위 새 둥지와 숲속 자그만 주택이 한눈에 시선을 붙들었다. 하나는 가지 끝 높은 곳에 있고, 다른 하나는 숲의 품 안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서로 전혀 다른 크기와 형태를 지녔지만, 이상하리만치 닮은 정서를 품고 있었다. 새가 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튼 것도 분명 살아가기 위한 뜻이 있었을 것이고, 이 집이 이 자리에 세워진 것 또한 주인의 삶의 철학과 선택이 담긴 결과일 것이다.

이 장면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며 참으로 조화로운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계단도 필요한 만큼만 놓여 있어 작은 오솔길처럼 보인다. 정원 또한 억지로 꾸민 흔적 없이 자연에 스며들어 있다. 따로 정원을 만들었다기보다 자연이 곧 정원이 된 셈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을 굳이 만나보지 않더라도, 그 마음이 자연을 닮았으리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사람도 제대로 살려면 자연을 거스르기보다 자연을 닮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이 작은 풍경이 조용히 일러주었다.

이러한 상태를 두고, 나(我)와 자연(物)이 하나(一)의 몸(體)을 이룬다고 하여 물아일체(物我一體)라고 한다. 눈앞의 풍경은 단순히 예쁜 숲속 풍경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의 삶과 자연의 질서가 잘 어울리는 장면이었다. 

새는 둥지를 틀고, 사람은 집을 짓지만, 결국 둘 다 살아갈 자리를 마련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그렇게 보면 둥지와 가정은 모두 생명을 품고 하루하루를 이어 가는 삶의 보금자리라는 공통된 의미를 지닌다.

이 풍경을 바라보며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의 ‘순수지속’이라는 개념도 떠올랐다. 시간은 끊어진 점들의 집합이 아니라, 서로 스며들며 흐르는 생생한 경험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에만 사는 존재가 아니다. 지금의 나 안에는 지나온 시간의 결이 함께 살아 있으며, 과거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 녹아 있다. 그러므로 삶은 단순히 계산되거나 분절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되고 이어지며 축적되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숲속의 작은 집과 나무 위 새 둥지는 바로 그런 시간의 의미를 조용히 말해주었다. 오랜 계절을 지나며 쌓인 흔적, 바람과 햇빛을 견디며 제 자리를 지켜 온 생명의 방식, 그리고 그 속에 깃든 삶의 온기가 한 장면 안에 모두 담겨 있었다. 

가정이란 건축으로 이루어진 구조물이 아니라, 사랑이 스며들고, 시간의 흐름 속에 기억이 머무는 자리다. 둥지도 마찬가지다. 생명이 쉬고, 자라고, 돌아오는 곳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하나의 작은 우주다.

이날 숲의 새 둥지와 자그만 주택은 내게 말없이 하나의 단상(斷想)을 남겼다. 삶은 크고 화려한 데 있지 않다. 자연과 지나치게 맞서지 않으면서도 자기 자리를 단정히 지키는 것, 그리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조용히 자신의 온기를 품는 데 있다. 둥지와 가정은 그렇게 서로를 비추며,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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