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문화저널 뉴스추천뉴스2026. 6. 8. 오후 5:43:41

전통 기술로 재현된 궁궐 전각 집기의 ‘생애주기’ 조명

「장인의 손과 도구를 만나다」 특별전 문화유산은 완성품이 아니라 이어지는 시간

최대식 기자
전통 기술로 재현된 궁궐 전각 집기의 ‘생애주기’ 조명
즉조당 전경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소장 이승재)는 (재)아름지기(이사장 홍정현)와 함께 6월 9일부터 21일까지 덕수궁 즉조당(서울 중구)에서 특별전 「장인의 손과 도구를 만나다」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궁궐 전각 내부 집기의 재현과 보수 과정을 조명하며, 문화유산이 만들어지고 사용되며 다시 보존되는 ‘생애주기’를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시에서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진행된 궁궐 전각 내부 집기 재현사업을 통해 제작된 즉조당 집기 11종 14점과 철제은입사촛대, 일월오봉병의 보수 과정 영상, 그리고 제작과 보수에 참여한 전통 장인들의 작품과 도구를 함께 선보인다.

이번 특별전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아름다운 유물을 전시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문화유산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유지되며, 누가 그 가치를 이어가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우리는 흔히 문화유산을 과거의 유물로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문화유산은 박물관 진열장 안에 멈춰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를 거쳐 사람의 손을 통해 지속해 관리되고 계승되는 살아 있는 문화다.

덕수궁관리소와 (재)아름지기, 그리고 에르메스는 2015년부터 궁궐 전각 내부 집기 재현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해 오고 있다. 궁궐 건축물은 비교적 잘 알려졌지만, 실제 궁궐 생활을 보여주는 내부 집기류는 자료 부족과 연구의 한계로 인해 복원과 재현이 쉽지 않았다. 

이에 세 기관은 고증 자료를 바탕으로 궁궐의 생활문화를 복원하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왔다. 이는 단순한 복제품 제작이 아니다. 과거 장인들의 기술과 철학을 오늘날 다시 구현하는 문화유산 복원 작업이며, 전통 기술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이번 전시의 핵심은 ‘철제은입사촛대’에 담긴 이야기다. ‘철제은입사촛대’는 서울시 무형유산 입사장 보유자인 최교준이 제작한 작품이다. 이번 보수 작업에는 그의 제자이며 서울시 무형유산 입사장 신선이 이수자가 참여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수리 작업을 넘어선다. 스승이 만들었던 기물을 시간이 흐른 뒤 제자가 다시 손질하고 보수한다는 것은 기술의 계승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문화유산은 물건만 남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정신, 그리고 사람의 관계가 함께 이어질 때 비로소 살아남는다.

즉조당 재현 집기

 

전통 기술은 책으로만 전수될 수 없다. 장인의 손끝에서 손끝으로, 경험에서 경험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생명력을 유지한다. 이번 촛대 보수 과정은 무형유산이 어떻게 유형유산을 지켜내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함녕전에 배치된 ‘일월오봉병’ 역시 마찬가지다. ‘일월오봉병’은 조선 왕실을 상징하는 대표적 회화 작품으로, 전통 회화 화백인 권오창이 제작과 보수에 모두 참여했다. 여기에 배첩(褙貼, 종이나 비단에 그린 그림, 글씨, 병풍 등을 오래 보존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뒷면에 종이나 천을 덧붙여 보강하는 전통 기술) 전문가인 김용신의 손길이 더해졌다.

문화유산 보존은 단순한 복원이 아니다. 원형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미래 세대가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섬세한 작업이다. 따라서, 보존은 과거를 고정하는 일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일에 가깝다. 최근 문화유산 분야에서는 ‘살아 있는 유산(Living Heritage)’이라는 개념이 강조되고 있다. 이는 문화유산을 단순히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 속에서 활용되고 경험되어야 하는 문화 자산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이번 특별전 역시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관람객들은 단순히 완성된 유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장인이 사용한 도구와 제작 과정, 보수 과정까지 함께 살펴보게 된다. 문화유산의 결과뿐 아니라, 과정까지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특히, 6월 16일에는 신선이 입사장 이수자가 직접 참여하는 ‘전통 장인과의 만남’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이는 관람객들이 문화유산을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사람과 이야기를 직접 만나는 경험을 제공하는 일다. 문화유산의 가치는 유물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 온 사람들의 기술과 철학 속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덕수궁관리소는 이번 전시를 통해 궁궐 집기의 제작과 보수, 계승 과정을 국민이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문화유산은 한 번 만들어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제작되고, 사용되며, 보수되고, 다시 전승되는 긴 시간을 거쳐야 비로소 유산이 된다.

이번 특별전은 바로 그 시간을 보여주는 전시다. 그리고 그 시간의 중심에는 언제나 장인의 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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