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세에 처음 붓을 든 어머니와, 그에게 그림을 권했던 화가 아들이 10년에 걸쳐 함께 만들어온 예술의 시간이 한자리에서 다시 펼쳐진다.
도가헌미술관은 9월 5일부터 10월 10일까지 특별기획전 ‘나는 너를 살았고, 너는 나를 그린다 - 10년의 여정 김두엽·이현영 모자전’과 이현영 초대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동시에 개최한다. 오프닝과 북토크는 9월 19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그림을 그렸다는 가족 서사에 머물지 않는다. 한 사람이 살아낸 시간이 어떻게 예술의 언어가 되고, 그 기억이 다시 다음 세대의 회화에 스며드는지를 보여준다.
고 김두엽 작가는 83세가 되던 해 달력 뒷면에 사과 한 알을 그리며 그림을 시작했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평생 경험한 노동과 가족, 고향과 자연, 기억과 그리움을 자신만의 색과 형태로 옮겼다. 이후 700여 점의 작품을 남기며 ‘그림 그리는 할머니’, ‘한국의 모지스 할머니’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그의 작품세계는 KBS ‘인간극장’, ‘한국인의 밥상’, ‘다큐 On’, ‘황금연못’과 EBS 등을 통해 소개됐으며, 저서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와 나태주 시인과 함께한 시화집 ‘지금처럼 그렇게’ 등을 통해서도 대중과 만났다.
그 시작에는 아들 이현영 작가가 있었다. 처음에는 아들이 어머니에게 그림을 권했다. 그러나 1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관계는 달라졌다. 어머니가 아들의 권유로 그림을 시작했다면, 아들은 오히려 어머니의 그림에서 자신이 미처 보지 못했던 시간과 삶의 감각을 발견했다.
김두엽이 기억 속 가족과 고향, 노동의 시간을 소박하고 따뜻한 색채로 되살렸다면 이현영은 나무와 숲, 대지와 밤하늘을 반복적인 붓질과 색의 중첩으로 구축하며 시간과 생명, 존재의 문제를 탐구한다. 두 사람의 그림은 외형적으로 닮지는 않았지만, 바로 그 차이 속에서 서로의 세계를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도가헌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김두엽을 단순한 ‘늦깎이 할머니 화가’라는 감동적 서사에 가두지 않는다. 평생 한 여성에게 축적된 삶과 노동, 가족의 기억이 독자적인 조형 언어로 전환됐다는 점에서 ‘삶 기반 예술’로 다시 바라본다. 동시에 이현영 역시 어머니를 도운 조력자가 아니라, 오랫동안 독립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로 조명한다.
같은 기간 2전시장에서 열리는 이현영 초대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이러한 이야기를 개인의 내면으로 확장한다. 윤동주의 시와 삶에서 출발해 하늘과 바람, 나무와 대지, 별빛 등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고향 광양과 연결된 윤동주, 매천 황현, 김승옥의 문학적 세계도 작가의 회화적 성찰에 중요한 배경이 된다.
이번 두 전시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삶은 무엇으로 남는가’다. 김두엽에게 그림은 평생 살아온 시간을 뒤늦게 자신의 언어로 되찾는 일이었고, 이현영에게 그림은 그 시간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다시 묻는 방식이 됐다.
어머니는 이제 곁에 없지만, 그가 남긴 색과 기억은 아들의 그림과 전시를 통해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이번 전시는 삶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다시 다른 사람의 삶을 움직이는 과정이라는 그 긴 시간의 이동을 두 세대의 회화로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