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구상나무와 고산 침엽수림이 더 이상 자연의 자정 능력만으로 버텨 낼 수 없는 한계 앞에 서 있다. 오랫동안 고산성 기후 환경에서 살아온 이 나무들은 기후위기의 최전선에서 가장 먼저 변화를 견뎌내는 생명들이다.
산림청(청장 박은식)은 정부대전청사에서 기후위기로 서식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지리산 권역 고산 침엽수종을 보호하기 위해 ‘산림생태계 기후위기 적응 협의회’를 개최했다고 9일 밝혔다.
이는 숲의 위기를 더 늦기 전에 정책의 언어로, 협력의 구조로, 과학의 체계로 옮겨야 한다는 움직임이다.
이번 협의회에는 국립공원공단, 관련 지방정부(전북특별자치도·전라남도·경상남도),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가 한자리에 모여 산림청이 그동안 축적해 온 지리산 고산 침엽수의 모니터링 결과를 관계기관 및 환경단체와 공유하고, 현장 상황에 가장 적합한 실효적 보전대책을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산림청과 국립공원공단의 지리산 고산 침엽수종 생육 현황 모니터링 결과를 바탕으로 지리산 고산 침엽수의 위기 상황에 공감했으며, 기후변화에 따른 잠재 서식지 선정, 자생지별 보전 방안 등 체계적 모니터링과 과학적 분석을 기반으로 한 지역 단위 보전대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모니터링 데이터와 현장 관찰 결과를 바탕으로 지리산의 고산 침엽수종 고사가 심각한 지역의 관리 방안을 집중하여 논의했다. 이에 따라 지리산의 지형과 생태적 특성을 반영한 ‘자생지 복원’과 ‘현지 외 보전’을 병행하는 입체적인 대응 전략을 추진할 계획이다.
손순철 산림청 산림생태복원과장은 “지리산 구상나무 보전은 과학적 데이터와 현장의 협력이 만날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라며, “이번 협의회를 통해 도출된 민·관의 지혜를 정책에 적극 반영해, 지리산의 침엽수림이 기후위기 속에서도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지리산 침엽수림의 위기는 단지 한 지역의 식생 변화로만 볼 수 없다. 고산 침엽수림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생태적 가치가 크고, 우리 산림의 수직적 생태 구조를 이루는 중요한 일부다.
그 쇠퇴는 곧 생물다양성의 축소이자, 기후위기에 대한 우리 생태계의 회복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경고로도 읽을 수 있다. 다시 말해 구상나무를 지킨다는 것은 특정 나무 한 종을 살리는 문제가 아니라, 산 전체가 가진 기후 적응력과 생태적 복합성을 지키는 일과도 연결된다.
오늘날 기후위기를 말할 때 사람들은 종종 극단적 폭염이나 대형산불, 홍수 같은 눈에 띄는 재난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이렇게 조용하게, 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지켜 온 나무들이 하나둘 말라 가는 방식으로도 드러난다.
이런 점에서 지리산의 구상나무는 지금 가장 느리지만 가장 분명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위기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제 그 신호를 듣고도 늦지 않게 움직이는 일이다.
데이터로 읽고, 현장으로 확인하고, 협력으로 대응하는 산림 보전 체계가 작동한다면, 지리산의 침엽수림은 기후위기 속에서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우리 사회가 기후위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도 있다.
숲을 지킨다는 것은 풍경을 유지하는 일이 아니라, 미래의 생태적 기반을 지키는 일이다. 지리산의 구상나무를 살리는 문제는 나무 몇 그루의 생존이 아니라, 자연이 유지하는 흐름을 우리가 얼마나 더 잘 이어지게 할 것이냐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