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하루 앞두고 있다. 선거철이 되면 늘 반복되는 말이 있다. “누가 돼도 다 똑같다.” “투표 한 번 안 해도 달라질 것 없다.” “기권도 의사 표현이다.” 언뜻 들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실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책임을 가볍게 내려놓는 말일 수 있다.
선거는 단순한 행사도 아니고, 정치인들끼리 벌이는 경쟁도 아니다. 그것은 국민이 자신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분명히 말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선언한다.
이 짧은 두 문장 안에는 민주주의의 본질이 들어 있다.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뜻이다. 주권이란 국민이 국가의 의사를 결정하는 힘이다. 이것은 대내적으로는 최고의 권력이고, 대외적으로는 자주적 독립성을 뜻한다.
다시 말해 선거는 단지 대표를 뽑는 절차가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이 자신의 권력을 실제로 행사하는 시간이다. 선거에 참여한다는 것은 권리를 행사하는 일인 동시에 주인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일이다. 이를 포기한다는 것은 자기 재산에 대한 권리행사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행위라고 비교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선거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거는 결과 하나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그 선택은 향후 지역의 교육, 복지, 세금, 교통, 안전, 개발, 돌봄, 일자리, 환경 정책으로 이어진다. 즉, 선거는 우리의 내일을 결정한다. 국민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국가와 지역 사회의 방향이 달라진다.
그래서 선거는 곧 나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미래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투표용지 위에 손을 얹는 순간, 비로소 한 사회의 방향이 구체적으로 정해진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선거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포기하거나 미룬다는 데 있다.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유는 대체로 비슷하다. “누구를 찍어도 마찬가지다.” “정치가 싫다.” “기권도 내 의사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현실을 바꾸는 방식이 되기보다, 현실을 남에게 넘겨주는 방식이 되기 쉽다. 정치적 무관심은 중립이 아니다. 그것은 결국 누군가가 대신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는 일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으면, 나보다 무책임한 사람이 선택한 결과를 내가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경고가 있다.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이 말의 뜻은 단순하다. 좋은 사람들이 정치와 사회 문제에 무관심하면, 결국 나쁜 사람들이 세상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치는 결코 정치인들만의 일이 아니다. 시민 모두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 교육도 정치의 영향을 받고, 복지도 정치의 영향을 받으며, 법과 세금, 일자리와 안전, 자유와 질서 역시 모두 정치의 결정 속에서 움직인다. 그런데 시민이 “나는 관심 없다”라며 물러나면, 권력을 탐하는 사람만 정치의 장에 남게 된다. 그 결과 공동체 전체가 수준 낮은 지도자와 무책임한 통치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보여준 문제의식도 다르지 않다. 그는 훌륭한 사람이 정치를 피하면, 결국 그보다 못한 사람이 권력을 잡게 돼서, 선한 사람은 나쁜 통치를 견뎌야 한다고 보았다. 이 말은 오늘에도 그대로 유효하다. 정치를 싫어하는 것과 정치를 포기하는 것은 다르다.
정치가 마음에 들지 않을수록 더 나은 사람을 찾고, 더 나은 기준으로 판단하고,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오히려 실망이 큰 시대일수록 참여의 책임은 더 무거워진다.
선거는 현대 대의민주주의 국가의 통치 질서를 형성하는 핵심 제도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대표자를 선출하며, 권력에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동시에 선거는 정치적 통합과 정치적 통제의 기능도 가진다. 국민은 투표를 통해 권력을 맡기기도 하지만, 잘못된 권력을 심판하기도 한다.
그래서 선거는 한편으로는 위임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견제다. 선거를 포기하는 것은 결국 내 삶을 결정할 권리와 통제력을 함께 내려놓는 일이다.
물론, 올바른 선택은 아무렇게나 할 수 없다. 반드시 올바른 관점과 올바른 정보가 필요하다. 선거는 감정이나 유행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후보의 자질과 정책, 과거의 행적과 공적 책임을 따져 보고, 결정해야 한다. 속아서 선택하면 그 손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
거짓 약속을 믿으면 지역이 흔들리고, 무능한 지도자를 뽑으면 행정이 흔들리며, 사익을 앞세우는 사람을 선택하면 공동체 전체가 그 대가를 치른다. 그래서 선거는 단순히 참여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바르게 분별하고 책임 있게 선택하는 일까지 포함한다.
미국의 소설가 루이스 라무르는 “투표하지 않는 사람은 불평할 권리도 없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다소 거칠게 들릴 수 있지만, 민주주의의 책임 윤리를 날카롭게 지적한 말이다.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결과에 대해 가장 쉽게 분노하지만, 정작 그 결과를 막거나 바꾸기 위한 최소한의 행동은 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프랑스 정치철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말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정부의 수준은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결국, 시민의 관심과 판단, 참여의 수준이 정치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지방선거라고 해서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오히려 지방선거는 국민의 삶에 더 가까운 선거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부모가 이용하는 복지 서비스, 우리가 걸어 다니는 길과 도로, 동네의 안전과 환경, 도시의 발전 방향은 지방자치의 결정과 직결된다.
국가의 큰 방향도 중요하지만, 일상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종종 지방정치의 수준이다. 그래서 지방선거를 포기하는 것은 내 삶과 가장 가까운 정치의 방향을 남에게 맡기는 일과 같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것은 참여로 유지된다. 선거는 민주주의가 아직 살아 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이며, 동시에 국민이 주권자라는 것을 실제로 드러내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이다.
한 표는 작아 보이지만, 민주주의는 바로 그 작은 표들의 합으로 움직인다. 내가 포기한 한 표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잘못된 영향력 행사로 넘어가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정치에 환멸을 느낄수록, 세상이 답답할수록, 더 나은 미래를 바랄수록 선거를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거를 포기해도 되나. 아니다.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반드시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가장 신중하고 책임 있게 선택해야 한다. 주권자의 침묵은 언제나 좋은 사람보다 나쁜 사람에게 더 유리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