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이사장 주대영)은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등 한반도의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식물의 목록을 체계화하고 생태적 특징을 정리하여 국내 첫 ‘한반도 고산대 식물 생태도감’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국립공원공단이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등 한반도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식물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국내 첫 ‘한반도 고산대 식물 생태도감’을 발간한 것은 단순한 도감 출간 이상의 의미가 있다. 고산식물을 ‘아는 것’이 곧 고산 생태계를 ‘지키는 일’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높은 산 정상부는 늘 멀리서 풍경으로 소비되기 쉽다. 그러나 그곳은 단지 경치가 좋은 장소가 아니라, 기후변화와 생태계 변화가 가장 먼저 드러나는 전선에 가깝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식물이 버틸 수 있는 조건은 더 까다로워지고, 작은 기온 변화조차 서식 범위를 크게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고산대에 분포하는 식물은 교목한계선 위에 사는 고산식물과, 삼림한계선과 교목한계선 사이에 주로 분포하는 아고산대 식물로 나뉜다. 설악산을 기준으로 보면 고산대는 홍월귤이 분포하는 대청봉 일원 해발 1,600m 이상, 아고산대는 분비나무 숲이 형성되는 해발 1,000m 이상을 뜻한다. 이은 고산대 식물이 단지 ‘높은 산에 사는 식물’이라는 막연한 범주가 아니라, 숲의 경계와 나무가 자랄 수 있는 한계를 기준으로 매우 섬세하게 구분되는 생태계 구성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도감은 2022년부터 국립공원공단과 한국식물분류학회 전문가들이 함께 진행해 온 공동 연구의 결과물이다. 연구진은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등 주봉 높이가 해발 1,000m 이상인 산악형 국립공원 8곳과 백두산에 서식하는 고산대 식물을 조사해 총 195종을 목록화했다.
이 가운데 고산식물은 68종, 아고산대 식물은 127종으로 정리됐다. 대상이 된 산은 한라산(1,947m), 지리산(1,915m), 설악산(1,708m), 덕유산(1,614m), 태백산(1,567m), 오대산(1,565m), 소백산(1,439m), 월악산(1,097m), 속리산(1,057m), 그리고 백두산(2,744m)이다. 이는 한반도 고산 생태계를 대표하는 식물군을 하나의 체계로 엮어 냈다는 점에서 학술적 기초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다.
특히, 이번 도감은 목록 정리에만 머물지 않았다. 총 195종 가운데 좀다람쥐꼬리, 매화바람꽃, 홍월귤 등 151종에 대해서는 사진과 형태적 특징, 생태 정보, 분포 현황 등을 함께 수록했다. 이는 연구자만을 위한 분류 자료가 아니라, 일반 탐방객과 시민도 고산식물의 특징과 생태적 가치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는 뜻이다.
도감에 실린 식물 중 홍월귤은 그 상징성이 특히 크다. 진달래과에 속하는 홍월귤은 설악산과 백두산 등의 고산대에 서식하는데, 설악산의 경우 이 식물이 살 수 있는 분포의 남방한계선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로는 위도 38도, 고도 1,600m가 그 경계로 제시됐다.
이 사실은 왜 고산식물이 기후변화의 지표종으로 불리는지를 잘 보여준다. 서식 가능 범위가 이미 지리적으로 남쪽 끝에 걸쳐 있는 식물은 기온 상승과 환경 변화에 훨씬 더 민감하게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산식물의 분포 변화는 결국 한 종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가 생태계 경계를 어디까지 밀어 올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가 된다.
이번 생태도감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고산식물을 ‘풍경의 일부’가 아니라, ‘보전의 대상’으로 다시 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일반 탐방객에게 높은 산의 식생은 종종 비슷비슷한 초목의 집합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각각의 식물이 자랄 수 있는 온도와 토양, 습도, 바람 조건이 다르고, 그 분포 범위 역시 매우 제한적일 수 있다.
그런 만큼 도감은 단순한 관찰 안내서가 아니라, 고산 생태계가 얼마나 섬세한 균형 위에 놓여 있는지 알려 주는 교육 자료이기도 하다. 국립공원공단이 이번 도감을 연구자뿐 아니라, 탐방객과 국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밝힌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단은 이 도감을 국립공원연구원 누리집에서 5월 22일부터 공개한다. 이는 자료의 활용 범위를 연구 현장에만 한정하지 않고, 대중과 공유되는 공공 지식으로 확장하겠다는 뜻이다. 고산 생태계 보전은 결국 전문가만의 과제가 아니라, 산을 찾는 시민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아는 것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도감의 공개는 연구 결과를 쌓아 두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사회적 이해와 보전 의식으로 옮기는 첫 단계가 될 수 있다.
주대영 국립공원공단 이사장은 “고산대 식물은 기후변화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생태계의 지표종”이라며, “이번 생태도감 발간을 계기로 고산대 식물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와 조사를 강화하고, 국민과 함께하는 고산 생태계 보전 활동도 지속하여 확대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고산식물은 정상부를 장식하는 희귀한 식생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의 생태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드러내는 살아 있는 기록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번 도감의 의미는 195종을 목록화하고 151종의 사진과 생태 정보를 담았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다.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보전이라는 거대한 문제를 한반도 높은 산에 살고 있는 식물들의 이름과 모습, 분포와 한계라는 매우 구체적인 언어로 번역해 냈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고산을 기록하는 일은 결국, 사라지기 전에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먼저 배우는 일이다.

